구매하기 사랑은 때때로 폭력을 부른다. 비틀린 영웅들의 하드보일드 러브 스토리!“상처 입을 거야, 로라. 고통을 갈망하는 게 당신 천성이니까.” 뉴욕 도심의 호화로운 맨션에 사는 미모의 커리어 우먼 로라가 자신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화려한 업적으로 이름 높지만 오만한 형사 맥퍼슨은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문필가 월도 라이데커를 만나 로라의 이야기를 들은 뒤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여자를 둘러싸고 뒤바뀌는 관계, 싹트는 의심, 그리고 안타까운 결말. 전 세계 미스터리 거장들의 주옥같은 명작을 담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이 『오시리스의 눈』, 『구석의 노인 사건집』과 함께 아홉 번째 작품 『나의 로라』를 선보인다. 도러시 휴스, 마거릿 밀러와 함께 194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삼대 여성 범죄 소설 작가인 비라 캐스퍼리는 당시 남성에만 집중한 하드보일드의 틀을 깨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여성을 중심에 둔 팜파탈 누아르 하드보일드를 써 문단의 극찬을 받았다. 대표작 『나의 로라』에서 캐스퍼리는, 남성의 통제를 거부한 팜파탈‘로라’의 죽음을 파헤치며 사랑과 폭력의 상관관계를 밝힌다. 범죄 소설과 결합된 비틀린 러브 스토리 비라 캐스퍼리는 대공황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1940년대, 불황을 딛고 범죄 소설 작가로 굳건히 자리 잡은 작가다. 캐스퍼리는 여성의 섬세한 눈썰미를 장점으로 활용해 남녀 간의 애증과, 그중에서도 남성이 여성에게 집착하며 쏟는 독점욕을 탁월한 범죄 소설로 완성해 냈다. 캐스퍼리의 범죄 소설은 러브 스토리를 다루면서도 단순한 신파극에 그치지 않는다. 살인 사건과 결합된 캐스퍼리의 러브 스토리는 차별의 어려움과 파산의 위기를 헤쳐 나온 캐스퍼리의 경험이 반영되어 현실적이고 신랄하다. 특히 첫 범죄 소설이자 대표작인 『나의 로라』에는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 등장인물들이 신경전을 펼치는 불꽃 튀는 대화, 읽는 순간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는 화려하고 섬세한 묘사 등 캐스퍼리의 특징이 모두 드러나 있다. “완벽하지 않으면 내겐 가치가 없나요?” 당시 하드보일드가 인기를 끈 요인이 현실적인 수사관의 삶을 건조하고 명료한 문체로 다룬 것이었다면, 비라 캐스퍼리의 하드보일드는 촘촘히 엮인 남녀 사이의 애증과 살인 사건에 끝없이 완벽해질 것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그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이런 특징은 특히 인물에서 잘 드러난다.『나의 로라』에서 로라의 죽음을 계기로 사건에 뛰어들게 된 형사 마크 맥퍼슨은 박봉인 직업과 고된 삶 때문에 이상형을 만나 안정된 생활을 꾸미는 것을 포기한 인물이다. 사건의 참고인으로서 맥퍼슨에게 로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본인인 월도 라이데커는 많은 이들의 선망을 받는 연극배우가 되기를 꿈꿨다가 비대한 몸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문필가가 된 사람이다. 로라의 약혼자인 셸비 카펜터는 무능력하지만 말쑥한 외모를 바탕으로 떵떵거리는 삶을 거머쥘 수 있다는 헛꿈을 꾸는 인물. 이들 모두는 각자 나름의 성공을 거머쥐었으면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는 데 익숙한 태도를 보인다. 예전에는 살집이 있으면 성격이 좋은 걸로 해석되던 때도 있었건만 지금 우리는 운동을 신성시하고, 영웅들은 항상 군살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피곤한 시대에 살고 있다. (본문 33쪽) 작중에서 놀라운 지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월도 라이데커의 서술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꿈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자다’,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삶이 성공한 삶이다’는 구호 속에서 맥퍼슨, 라이데커, 카펜터는 모두 실패자다. 그런 이들 앞에 로라가 나타난다. 이상형을 만나길 포기했던 맥퍼슨 앞에 나타난 이상형이자, 다른 이들의 선망을 받고 사랑하는 여자의 숭배를 받고 싶어 한 라이데커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제자, 어떤 자리라도 잡아 출세하고 싶어 하던 카펜터에게 직업을 준 뛰어난 능력의 상사. 로라는 이들 모두에게 자신을 잡으면 단숨에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 준다.한 여성에게 집착하며 그녀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흔한 치정극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눈앞에 여태껏 살아온 삶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트로피’로 로라가 나타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걸린 결투와 대결 이야기가 된다. 이기는 사람은 영웅이 되지만, 지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실패자가 되는, 비극적인 영웅담. 여성이 한심한 일상을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 『나의 로라』는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로서나 현대 사회를 은유하는 문학 작품으로서나 좋은 평을 받는 작품이지만, 현재까지도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여성들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고,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남성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당연했던 1940년대의 미국이다. 비라 캐스퍼리는 오랫동안 결혼하지 않으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애쓰는 로라라는 인물을 통해, 남성이 지배하며 여성은 주변인물에 그치는 기존 세계관과 선을 긋는데 성공했다.『나의 로라』 이전까지 하드보일드 장르는 남성들의 것이었다. 『나의 로라』와 비슷하게 한 시대의 붕괴와 순수한 꿈의 추구를 보여 주는 작품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1925)에서도 개츠비와 톰의 사랑을 받는 데이지는 대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로라는 주체적으로 자신이 사랑할 상대를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을 지며, 생활력 있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캐스퍼리는 남성 우위의 세상을 지키려는 남성과 그 안에서 독립적인 삶을 쟁취하려는 여성 간의 대결 구도를 능숙하게 펼쳐 나가며 로라의 입을 빌려 이런 말도 전한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달라요. (…중략…) 저에게 있어서 자유란 한심하고 쓰잘머리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습관을 내 스스로 조절하며 주체적으로 사는 거예요. (본문 151쪽) 삶의 주도권을 남성에게 빼앗겨 살아야 했던 당시 여성으로서 대담한 발언이다.사실 이 책에서 수많은 남성들이 로라에게 바치는 찬미의 말은 동시에 증오의 말이기도 하다. 로라는 단순한 희생자나 흔히 팜파탈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남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매혹적인 그녀’가 아니다. 남성을 유혹하여 그 매력에 기대어 사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남성들의 통제를 거부하는 여성이다. 그래서 『나의 로라』는, 남성들이 공분하면서도 사랑을 구할 수밖에 없는 현대적인 팜파탈의 누아르 하드보일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