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하기 원래 내 것, 내가 타고난 것, 내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겠습니다.“신에 대한 반역이래도 난 두렵지 않아요.”‘일본의 애거사 크리스티’ 나쓰키 시즈코의 기막힌 반전을 맛볼 수 있는 수작 미스터리!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리카코. 회사가 도산 위기에 빠져 괴로워하던 애인 도모나가의 제안으로 동반 자살을 결심한다.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정신을 잃었지만 리카코는 죽지 못하고 깨어나버린다. 그런데 곁에 있던 도모나가는 칼에 찔려 죽었고 칼자루는 리카코의 손에 쥐여 있는 게 아닌가. 죽음의 동반자를 살해할 이유는 없다. 리카코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치열한 삶 속으로 다시 뛰어든다! 전 세계 미스터리 거장들의 주옥같은 명작을 담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서른 번째 작품, 『흑백의 여로』가 출간되었다. 『흑백의 여로』는 ‘일본의 애거사 크리스티’ 나쓰키 시즈코의 본격 미스터리 작품으로, 그녀의 장기인 섬세한 심리 묘사와 드라마틱한 전개를 만끽할 수 있다. 동반 자살에 실패해 살인 누명을 쓴 주인공이 제2, 제3의 살인과 맞닥뜨리며 서스펜스가 고조되고, 마침내 진상이 드러나는 순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절묘한 트릭에서 ‘속았다’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범인은 누구인가’를 추적하는 본격 미스터리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까지 확장되는 결말은 비극적인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인물을 조명하며 가슴 저린 감동을 선사한다. ‘일본 본격 미스터리 여왕’의 솜씨! 『흑백의 여로』는 작가 나쓰키 시즈코의 전성기인 1970년대 작품이다. 주인공 리카코는 삶에 대한 열정은커녕 의지도 없는 인물로, “죽는 게 별로 무섭지 않아요. 언제 죽어도 아무 미련 없어요”라고 말하며 동반 자살 제안을 깊은 고민 없이 수락해버린다. 바로 다음날, 리카코는 애인과 함께 산속에서 수면제를 잔뜩 삼켰지만 몇 시간 후에 약을 토하며 깨어나고 만다. 그런데 곁에 있던 애인은 칼에 찔려 죽었고 칼자루는 리카코의 손에 쥐여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리카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여자가 남자와 동반 자살을 시도하다가 남자를 살해한 상황’처럼 보인다. 리카코는 패닉에 빠져 살인 현장에서 도망친다. 나쓰키 시즈코의 본격 미스터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살해범을 찾아 단죄하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자. 본격 미스터리의 전통적 주제인 ‘범인은 누구인가?’란 질문이 작품을 이끄는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며, 리카코의 두 번째 삶의 목표가 된다.리카코는 수사를 진행하며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몇 가지 가설을 세운다. 여기에 힘을 더하는 동료가 등장하여 그녀와 추론을 주고받는다. 각자의 가설을 논파하고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증거를 찾는 과정은 황금기 미스터리를 떠올리게 한다. 수사의 결과 피해자의 아내, 즉 애인의 본처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남편이 내연녀와 자살하려는 걸 눈치챈 아내가 자신의 내연남과 공모하여 철저하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흑백의 여로』는 그렇게 빤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나쓰키의 트릭은 여기서 한 단계 진화하여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 칼에 찔려 살해당한 사람은 리카코과 동반 자살을 약속했던 애인이 진짜 맞을까? 의문은 사건의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범인은 누구인가?’로 시작된 미스터리는 ‘피해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로 발전한다. 마침내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 살인이 벌어지기 전부터 플롯 곳곳에 은밀하게 설치되었던 복선이 빛을 발하며 미스터리를 완성한다. 결말에 다다랐을 때 독자들은 ‘언제나 놀라운 결말을 제시하는 작가’ 나쓰키 시즈코의 명성에 다시 한번 감탄할 것이다. “신에 대한 반역이래도 난 두렵지 않아요.” 나쓰키 시즈코는 트릭을 중시하는 본격 미스터리 작가이면서도 당대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특징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해냈다. 『흑백의 여로』의 주인공 리카코는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정신적으로는 공허했던 70년대 일본 젊은이들의 표상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현실감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다가 죽음에 발을 들이고 말았던 당시 청년층의 문제를 보여준다. 구사일생으로 얻은 두 번째 삶에서 리카코는 시시각각으로 조여오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남장을 했다가 기묘한 흥분과 안정감을 느끼고 혼란에 빠진다. 남자로 보일 때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느꼈던 이유는 누명을 쓴 도망자 신세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남자가 되고픈 욕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리카코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적용되며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흑백의 여로』에선 타인의 호적을 사거나 외모와 이름을 바꾸어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고 새로운 삶을 추구했기에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린다. 누구는 누명을 벗기 위해, 누구는 부귀영화를 갖기 위해, 누구는 사랑을 얻기 위해. 목적이 순수하든 불순하든 사회는 이들을 색안경 끼고 바라본다. 나쓰키 시즈코는 개인을 재단하는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편견에 가득차 있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1970년대의 일본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쓰키는 독자들에게 좀더 열린 시각을 가지라고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대신 ‘인생은 흑백 중 어느 한쪽으로 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작품 속에 설득력 있게 풀어놓았다. 인생의 복잡함, 때로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면모에 대한 나쓰키 시즈코의 심도 있는 고찰을 『흑백의 여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성 미스터리의 선두주자 트릭 중심의 전통적인 미스터리를 계승한 본격 미스터리 작가인 나쓰키 시즈코는 일본 미스터리 계보에서 독보적이고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20년대 영국에서 황금기를 누렸던 미스터리를 이어가면서도 1970년대 당시부터 여성 캐릭터가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미스터리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을 유혹해 이성을 흐리는 팜파탈이거나, 사건의 목격자 혹은 피해자로서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기절해버리는 비이성적이고 가녀린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나쓰키 시즈코는 주변인에 불과했던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기용하고, 총명하며 자기 욕망에 솔직한 인물로 그렸다. ‘아사부키 리야코’ 시리즈의 검사 리야코, ‘가스미 유코’ 시리즈의 변호사 유코, 『증발』의 실종자 미나코,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의 생존자 하루카에 이어 『흑백의 여로』의 대학생 리카코까지, 이들은 각양각색의 성격과 직업을 가졌지만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의 중심인물로 활약한다. 특히 『흑백의 여로』의 리카코는 사건을 겪으며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굳은 의지를 가진 성숙한 인물로 성장한다. 나쓰키는 다양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성장하는 여성’까지 보여줌으로서 점점 더 다양한 여성상이 등장하는 현대 미스터리의 기반을 다졌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