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하기 소설 듀나의 단편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는 한국에 영화를 촬영하러 온 외국인 배우의 눈을 통해 어떤 ‘완전범죄’의 전후 맥락을 보여준다. 살인 미스터리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각종 수수께끼가 은밀하게 중첩된, 읽을수록 새로운 맥락이 느껴진다. 렉스 스타우트의 단편 「오늘의 일품요리는 비소」는 여러모로 현대적인 재독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네로 울프의 미식에 대한 취향과 재치있는 말싸움은 여전히 즐겁지만 그의 여성 혐오적 성향이 크게 두드러지며, 살인 사건을 둘러싼 상황은 미국의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서 촉발된 ‘me too’ 운동을 연상시킨다. ‘일본 미스터리와 여성’이라는 특집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이 두 작품을 읽는다면, ‘그때’의 시선과 ‘지금’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획기사 2호의 가정 스릴러 특집, 9호의 소녀 미스터리 특집에 이어 《미스테리아》 18호는 ‘미스터리와 여성’이라는 큰 틀을 다시 한 번 탐색한다. 지금까지 서구 미스터리 속의 여성에 대해 주로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아시아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걸출한 여성 작가들과 여성 캐릭터들을 수없이 배출한 일본 미스터리로 눈을 돌렸다. 도쿄 전력 OL 사건의 컨텍스트, 기리노 나쓰오가 그려낸 (기존의 많은 픽션들과는) ‘다른’ 여성들, ‘이야미스’(읽고 나면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미스터리,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고 범죄 및 사회 현상을 그려내는 작품을 가리키는 조어)라는 장르가 주목하는 여성들의 심리, 일본의 대표적인 남성 미스터리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만들어낸 ‘사랑 받는’ 악녀들과 더불어 편집부가 강력 추천하는 일본 미스터리 여성 작가들의 소사전을 마련했다. 영화감독이자 영화 평론가 정성일의 특별한 연재 ‘SESSION’에서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마인드헌터>를 두 번째로 살펴본다. 드라마 오프닝 혹은 엔딩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출몰하곤 했던 수수께끼 같은 남자의 정체에 대해, 드라마 내에서는 이름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악명 높은 실제 연쇄살인범에 대해 이 드라마가 취하는 시선의 방향을 흥미롭게 기술하였다. ‘NONFICTION’ 코너에선 이주현 프로파일러가 방화범에 대한 분석을 소개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누리는 듯했던 이가 방화에 빠져들게 된 계기를 살피다 보면 평범한 악의에 섬뜩해진다. 정은지 작가의 ‘CULINARY’는 마이 셰발?페르 발뢰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를 다룬다. 1960년대 ‘철의장막’ 부다페스트를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된 스웨덴 경찰 마르틴 베크가 겪는 불안감과 이질감을 헝가리 음식과 연결시키는 안목이 놀랍다. 홍한별 번역가의 ‘MIRROR’는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찰스 맨슨과 패밀리의 추악한 범죄 이면을 추적한다.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갈수록 광기와 성스러움과 비열함과 어리석음이 뒤섞인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관해 착잡함을 느끼게 된다. 곽재식 작가의 ‘PULP’는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이후 한국에도 밀어닥쳤던 로켓 붐 속에서 위태로운 게임을 벌였던 어떤 젊은이의 행보를 추적한다. 한 명의 탐정, 한 권의 책, 혹은 하나의 사건 등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코너 ‘SUMMARY’에선 19세기 초 범죄자와 탐정의 경계선에서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실존 인물 비독을 다룬다.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미스터리 신간 서평 코너에선 시오타 다케시의 『죄의 목소리』, 베키 매스터먼의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다카무라 가오루의 『레이디 조커』, 오타 아이의 『범죄자』 등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