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하기 소설 SF와 판타지 등의 장르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작가 정세랑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미스터리에 도전했다. 「갑시다, 금성으로」는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이자 망망대해에 뜬 배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밀실 미스터리’기도 하다. 정치 세력 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던 시기, 엉겁결에 결성된 독특한 탐정 듀오가 주거니받거니 추리를 진행하며 사건의 본질로 다가가는 과정이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음란죄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사건을 여럿 다뤘던 변호사이자 작가 존 모티머는, 동료들에게 은근히 무시당하는 변호사이자 싸구려 와인과 문학을 사랑하는 수다쟁이 럼폴을 등장시킨 시리즈로 영국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번에 소개하는 단편 「럼폴과 거품 낀 명성」은 미스터리 장르로서의 특징은 다소 약한 편이지만, 각자의 꿍꿍이를 품고 있는 여러 캐릭터들 간의 정신없는 입담과 하모니로 독자의 정신을 쏙 빼놓을 것이다. 『죽은 자는 알고 있다』로 잘 알려진 앤 리프먼은 가정 스릴러 장르의 선구자로도 손꼽히는 작가로서, 이번에 실린 단편 「《펜트하우스 포럼》 담당자님께」는 현실의 범죄를 소설로 옮기고자 분투하는 이의 속내를 섬뜩한 블랙코미디로 담아냈다. 기획기사 지독하게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고 빠르게 밀려온 찬바람 때문에 슬슬 겨울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에 맞춰, 《미스테리아》 20호는 북유럽 미스터리를 특집으로 다룬다. 스칸디나비안 스릴러, 요즈음엔 ‘노르딕 누아르’로 더 자주 호명되는 북유럽 미스터리만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노르딕 누아르의 세계적인 명성의 출발점이었던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부터 헨닝 망켈, 스티그 라르손,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카린 포숨, 요 네스뵈의 차가운 분위기와 사려 깊은 애도의 표현과 아름답고도 잔혹한 범죄에 매혹되었던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혹은 이 작가들이 궁금하지만 아직 접할 기회가 없었던 독자에게까지 알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특집을 마련했다. 특히 헨닝 망켈의 대표자들과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노르딕 누아르의 사회비판적 성향을 치열하게 형상화했다면, 그후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매우 다양해진 관심사의 작가군이 등장하며 노르딕 누아르의 스펙트럼이 넓고 깊게 확장하는 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소년범에 대한 고찰을 다룬 15호에 이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아동청소년 문학에서 범죄를 다룬다는 것의 의미를 고찰했다. 아동문학 평론가 김지은의 특별한 제안에 따라, 아동청소년 문학에서 범죄를 다루는 게 반드시 금기시되어야 하는 소재일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범죄를 목격하는, 범죄에 휘말리는, 혹은 범죄를 저지르는 미성년자의 초상은 또래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까? 어른들이 제약을 두는 청소년 소설속 세계와, 청소년들이 실제 삶에서 경험하는 폭력의 세계 사이에는 얼마만큼 큰 간극이 존재할까? 연재 기획도 언제나처럼 필자들 각자의 전문적이고 개성적인 시선으로 미스터리 장르와 실제 범죄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피부에 남은 멍자국을 통해 어떻게 범죄의 과정을 파헤칠 수 있는지를 소개하고, 이주현 프로파일러는 법의 빈틈을 빠져나가고자 노력했던 영리한 용의자의 진술 속 모순을 포착하며 자백을 이끌어냈던 과정을 들려준다(‘NONFICTION’). 홍한별 번역가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외딴 섬에서 벌어진 ‘스머티노즈 살인 사건’과 이를 바탕으로 한 애니타 슈리브의 소설 『물의 무게』을 함께 다루며, 이민자의 황폐하고 압도적인 고독이 빚어내는 기이한 범죄의 분위기를 전달한다(‘MIRROR’). 정은지 작가는 수많은 이들의 어린 시절을 불태웠을 에리히 케스트너의 소설 『에밀과 탐정들』을 소개하며,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슈툴렌과 당대 베를린의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엮어낸다(‘CULINARY’). 곽재식 작가는 1950년대 후반 잠깐 자극적인 화젯거리로 머물다가 모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여성의 시체를 둘러싼, 어이없고 서글프며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분노를 느끼게 할 일련의 소동을 전한다(‘PULP’).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미스터리 신간 서평 코너에선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 요한 테오린의 『가장 어두운 방』, 앤서니 호로비츠의 『맥파이 살인 사건』,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 송시우의 『검은 개가 온다』 등을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