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하기 기획 기사 창간 기념 특집으로 매년 준비했던 한국의 시대별 범죄 서사/범죄적 형상에 관한 기획은, 이번 호에서 2000년대와 2010년대를 아우르는 ‘21세기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2016년에 창간된 《미스테리아》가 8년 동안 꾸준히 동시대의 토픽(페미니즘 리부트, 소년 범죄, 감염병, 스포츠, 범죄 실화에 대한 열광 등)을 다뤘기 때문에, 이번 21세기 특집에서는 그동안의 빈틈을 메꾸는 기분으로 한국 미스터리의 새 얼굴들과 당대 유행을 즉각 반영했던 범죄 서사의 흐름을 살핀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던 ‘돈’에 얽힌 뜨거운 욕망을 담은 만화 <타짜>와 <쩐의 전쟁>부터, 실제 강력 사건(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을 모티브로 하여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들, 사회의 가장자리로 가장 먼저 내몰리는 청춘들의 불안과 공포를 빠르게 형상화하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급부상한 웹툰,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 과거로 멀리 우회하는 정조 시대 배경 역사추리소설, 미스터리 대중화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일본 미스터리의 흥행 등을 모았다. 번번이 예상을 뛰어넘는 현실의 변칙적인 운동과 겨루고 또한 경쟁하면서, 한국의 범죄 서사가 놀랍도록 확장되어 왔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연재 기사 역시 풍성하게 준비되었다. 정성일 평론가는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순응자>의 재개봉에 맞춰 파시즘의 풍경을 살핀다. 68혁명이 끝난 직후, 2차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의 불온한 공기를 해부한 모라비아의 원작을 펼쳤던 베르톨루치는 이 냉혹한 암살극으로부터 ‘환상’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인간군상의 ‘동조’와 ‘순응’의 과정을 완벽하게 포착한다.(‘SESSION’) 인터뷰 코너에서는 세 명의 작가를 만난다. 이중스파이의 눈을 통해 베트남전을 둘러싼 콘텍스트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동조자』와 『헌신자』를 쓴 비엣 타인 응우옌, 우리 일상 속 오컬트적 습속과 쉽게 전하지 못한 사랑의 마음에 담긴 수수께끼를 좇는 미스터리 ‘나의 오컬트한 일상’ 시리즈를 쓴 박현주, 30여 년에 걸쳐 스스로 세운 ‘최초’의 기록을 갱신해왔던 형사로서의 삶을 회고하는 『형사 박미옥』의 박미옥이 그 주인공이다.(‘MYSTERY PEOPLE’) 정은지 작가는 렉스 스타우트의 『요리사가 너무 많다』에 언급됐던 미국 남부의 주머니쥐 요리에 얽힌 인종차별의 역겨운 역사를 추적한다.(‘CULINARY’) 유성호 법의학자는 악성 종양으로 쇠약해진 환자를 두고 벌어진 범죄를 소개한다.(‘NONFICTION’) 곽재식 작가는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을 연상시키는 1960년대 사기꾼의 비상한 행적을 반추한다.(‘PULP’) 주목할 만한 신간을 다루는 ‘취미는 독서’ 코너에서는 오승호의 『폭탄』, 후지사키 쇼의 『신의 숨겨진 얼굴』, 레오 브루스의 『3인의 명탐정』, 홀리 잭슨의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등을 소개한다. 소설『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엘릭시르 펴냄)의 현찬양 작가가 이번에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호러 미스터리 「다섯 손가락」으로 찾아왔다. 지방 신도시의 짓다 만 집에서 딸과 엄마, 엄마의 파트너가 마주한다. 캄캄한 밤이 찾아오자 이곳에 또 다른 존재가 맴돌기 시작하고, 세 사람은 늦은 ‘식사’를 해야만 한다. 장르 소설 앤솔로지 『밤과 낮 사이 2』(빌 프론지니 외 지음, 이지연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에 실린 단편으로 소개된 바 있는 작가 마틴 리몬은 10년 동안 주한미군으로 근무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주한미군 범죄수사관 조지 수에뇨와 어니 배스컴 콤비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시리즈를 썼다. 이번에 소개하는 단편 「암거래 수사대」는 수에뇨와 배스컴이 미군 기지 내 PX에서 빼돌린 물품들을 암시장에 내다 파는 군인 가족들을 감시하던 중 마주친 살인 사건을 다룬다. 외부인의 눈으로 바라본 1970년대 서울 이태원의 풍경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거의 알려진 적 없던 1930년대 한국 작가 양유신의 단편 네 편 「배암 먹는 살인범」, 「우물 밑 방송실」, 「도적은 꿈속에」, 「찬비의 가방」도 게재된다. 인적사항조차 알려진 바 없는 작가 양유신은 기자 출신으로서 번역과 평론에도 상당히 조예가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해외 추리소설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이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스스로 높여 갔던, 기괴한 분위기와 논리적 추리를 넘나들며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을 흥미롭게 풀어나갔던 미지의 작가를 상상하게 된다.